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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제38문 신자가 부활할 때 받는 유익들

문: 신자가 부활할 때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답: 신자는 부활할 때, 영광 중에 일으킴을 받고 심판날에 공개적인 인정과 죄 없다 함을 얻으며, 완전히 복되게 되어 영원토록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할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우리가 복음이 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과 연합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큰 복과 유익을 얻게 됩니다. 특별히 지난 시간에는 성령과 믿음으로 우리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고 신랑되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때 우리는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도 많은 복과 유익을 얻는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죽음을 통해 우리의 몸과 영혼이 분리될 때, 우리의 영혼은 온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 가운데 들어가게 됩니다. 또 영혼이 떠난 우리의 죽은 몸도 여전히 그리스도와 연합된 채로 부활의 날까지 무덤에서 쉬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죽음과 함께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수고로운 삶을 멈추고 쉬게 될 것입니다.


신자가 부활할 때, 영광 중에 일으킴을 받고

오늘은 38문을 통해 우리 신자가 부활할 때에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유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38문을 함께 읽어봅시다. “신자가 부활할 때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신자는 부활할 때, 영광 중에 일으킴을 받고 심판 날에 공개적인 인정과 죄 없다 함을 얻으며, 완전히 복되게 되어 영원토록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할 것입니다.” 성경은 죽은 자들이 다 “부활할 때”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는 날이 올 거예요. 그 날은 언제인가요? 예수님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시는 그 날입니다. 그 날에 모든 죽은 자들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날 거예요.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서 죽은 신자들뿐 아니라 믿지 않았던 불신자들까지 모두 다시 살아나게 될 거예요. 다만 주 안에서 죽은 신자의 부활과 주 밖에서 죽은 불신자의 부활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악한 일을 행한 자들은 심판을 받기 위해, 선한 일을 행한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리입니다. 여러분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또는 죽은 동물이나 식물이 다시 살아난다고 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나요? 어려울 거예요. 특히 우리 몸은 죽으면 죽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썩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죽은 사람의 몸에서 가장 오래 남아있는 것이 뼈인데, 뼈도 우리나라와 같이 습한 환경에서는 30년 정도 지나면 다 삭게 된다고 해요. 하지만 하니님께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과 지혜와 지식으로 흙과 뒤섞인 몸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성경에는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와 엘리사 선지자는 수넴 여인과 사렙다 과부의 아들들을 살렸고, 예수님께서도 나사로와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기도 하셨어요. 사도들 역시 여러 번 그런 일들을 행하였지요. 물론 이렇게 살아났던 모든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 다시 죽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다는 것, 부활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해 주셨어요.


특별히 예수님 안에서 죽은 성도들은 매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게 될 거예요.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을 읽어봅시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지금 우리는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약해지고 죽어가는 몸을 입고 살아갑니다. 점점 신체의 기능이 떨어집니다. 나이가 들면 기억도 점점 희미해지고, 소화 기능도 떨어집니다. 관절이 닳아서 무릎도 아픕니다. 조금만 춥게 있으면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더 무거운 질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코로나). 그래서 몸에 어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마시지 않으면 목이 마릅니다. 하지만 다시 살아날 때에 입게 될 몸은 그런 몸이 아닙니다. 다시 살아날 때에 입게 될 우리의 몸은 썩지 않는 몸이며, 영광스럽고 강하며, 신령한 몸입니다.



심판 날에 공개적인 인정과 죄 없다 함을 얻으며

둘째로 영광 중에 일으킴을 받은 신자는 공개적인 인정과 죄 없다 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무덤에서 모든 사람이 일으킴을 받는 그 날은 심판의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영광 가운데 세상에 두 번째 오실 때에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심판자로 오십니다. 그때에 모든 사람은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일들을 아뢰며 주님의 최종적인 판단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는 세상의 마지막 날, 곧 죽은 사람들의 몸이 무덤에서 일으킴을 받고 다시 오신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세상을 심판하실 그 날에 대한 가르침이 많이 있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1-33) 예수님께서 앉아계신 영광의 보좌가 있고, 그 앞에 무덤에서 다시 일어난 모든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모든 사람들은 구별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살아왔던 성도들과 악인들이 나뉘어 집니다.


그 자리에서 성도들은 주님의 공개적인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이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모든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서 무죄하다는 선고를 받게 될 거예요.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 범했던 죄와 잘못들도 다 드러나게 되지만, 동시에 구원을 위해 우리가 의지했던 예수님의 피와 죽으심으로 인해 우리 죄악이 용서되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선포해주실 거예요. 또한 이 땅에서 주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제자로써 했던 모든 수고와 선행을 알아주시고 인정해주시며 칭찬해주실 것입니다. 반면 악인들의 죄를 낱낱이 드러내시며, 그들을 지옥 형벌에 처한다는 공개적인 판결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25:30)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46)



완전히 복되게 되어 영원토록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자는 부활할 때 “완전히 복되게 되어 영원토록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완전히 복되게 됩니다. 그때에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모든 갈망들은 완전히 만족하게 될 거예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갈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나 돈이나 권력, 안정을 추구하면서 그 비어있는 마음을 채우고 만족시켜보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도는 늘 실패합니다.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복음을 통해 복되시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알게 된 우리들은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과 만족, 위로를 조금씩 맛보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구름이 햇빛을 가리면 날이 어두워지듯,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충분히, 지속적으로 누리며 살아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한결 같지 않은, 변덕스러운 분이시기 때문일까요? 아니에요. 우리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활을 통해 우리는 완전히 복되게 됩니다. 그때 우리 영혼은 완전히 만족할 거예요, 더 이상 바라지 않아도 될 만큼 충만한 의와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거예요. 이처럼 복된 상태로 살아가게 될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하나님을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입니다(요일 3:2). 이 땅에서 우리의 연약한 믿음으로 희미하게 보았던 주님을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며 주님과의 친밀한 연합과 교제 속에서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뵙고, 하나님을 아는 완전한 지식을 얻게 될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는 완전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다윗은 이 땅에서도 이 사실을 멀리서 내다보며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부활을 통해 완전히 복되게 된 우리가 천국에서 주님을 뵐 때에 누리게 될 기쁨이 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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