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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여름성경학교] 관계 수업(2).

최종 수정일: 2021년 8월 7일

깨진 인간 관계의 회복 : 주님을 경외하라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시 34:9).


1. 깨진 인간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인간 관계가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가진 공통점은 사람을 위대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인데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우리의 삶에서 위대해지고, 우상이 되면 결국 우리를 지배하고 조종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과 사람을 동시에 경배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든지 사람들이 우리 눈에서 위대해지면 하나님은 별것 아닌 존재가 됩니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두려움의 올가미를 탈출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우신 분인지를 인식함과 동시에 사람들은 그렇지 못함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는 올바른 인간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2. 주님을 경외한다는 것


주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경외한다는 말의 일차적인 의미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무한한 격차로 인해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두려움을 갖습니다. 이러한 피조물이요 종으로서의 자연적인 두려움 외에도 범죄한 우리는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께 갖는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경외는 이런 두려움과 다릅니다. 경외는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여 가까이 이끌리는 감정이 포함됩니다. 그러면 피조물이요 죄인인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하나님께 날마다 가까이 나아갑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사랑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주님을 아는 지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바르게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방법을 배우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곧 자신의 존재와 성품과 행하신 일들을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묵상함으로 주님을 경외할 수 있고, 주님을 경외할 수록 성경을 더 가까이 하게 됩니다. 물론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세상과 우리 자신의 욕망과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결과 우리의 눈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더 크고 위대하게 보이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별로 영향력이 없는 작은 존재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능력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배워가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하나님을 아는데 자라기 위해서 특별히 도움이 되는 성경 말씀들이 있습니다. 먼저 잠언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이지 가르쳐 줍니다. 욥기 38-41장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던지시는 질문들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크심을 묵상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사야 6장에서 이사야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올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덜 생각하게 되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으로 가득차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복음서를 비롯하여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할 때, 하나님을 더욱 경외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야 할 심판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여 우리로 겸손하게 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큰 사랑을 받은 존재인지를 알게 하여 우리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를 묵상함으로 주님을 더욱 경외하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3. 여전히 우리의 욕구들이 채워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이 덜 중요하게 여겨지고, 스스로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의견조차도 덜 중요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의 필수적인 욕구들이 채워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즉 여전히 나에게는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지요. 친밀감, 자존감의 문제가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이때 우리가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은 성경적으로 우리의 욕구를 점검하는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이 이 문제를 보는 관점은, 우리는 사랑을 필요로 하는 빈 항아리와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로 채워주면 나는 행복할텐데”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바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필요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우리는 심리적 욕구를 채움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결핍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이 필요를 채우든지, 하나님이 채워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요 이론으로 성경을 볼 때 다음과 같은 이상한 해석이 가능해지는데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서로를 통해 사랑으로 채움받아야 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부부관계를 생각할 수 있는데요. 필요 이론에 의하면 부부는 상호간에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남편의 인정 욕구를 만드셨으니 그것을 채워주는 것이 아내의 의무이고, 하나님께서 아내의 친밀감의 욕구를 만드셨으니 그것을 채워주는 것이 남편의 의무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남편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아내가 인정해 주지 않을 때 분노를 느끼게 되고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이런 일은 교회에서 지체와의 관계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나는 사랑을 받아야 하는 존재인데, 목사님이, 선생님이, 저 친구가 내가 원하는대로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분노하게 됩니다. 이런 감정은 하나님께도 향할 수 있습니다. 필요 이론에 의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셔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필요를 만드셨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만큼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을 향해서 분노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내 필요를 채워주셔야 하니까요.


필요 이론의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셨나요? 필요 이론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매우 자기중심적 인간 관계를 형성하게 만듭니다. 즉 하나님도, 사람들도 나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존재로 보는 것이지요. 사실 다른 사람을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필요 이론의 또 다른 문제점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결핍된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 우리에게 이런 필요가 요구되는 결핍된 존재로 창조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그런 결핍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심리적 욕구를 채우려고 갈망하는 것은 창조와 구속 사이에, 우리가 범죄하였을 때 들어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심리적 갈망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 받기를 거부할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셨을 때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으로 우리를 넘치게 채워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핍된 존재로, 사람들에 의해 필요한 욕구를 채움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람을 통해서 우리의 인정, 친밀감을 채우려는 것은 성경적인 욕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충만한 사랑을 받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의 의무를 행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고, 구속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간 관계도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맺을 수 있습니다.


4. 결론


필요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마이너스’ 인생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얻어서 결핍을 채워서 ‘0’을 만드는 인생이지요. 하지만 이 결핍은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마치 밑빠진 독과 같이 채워도 채워도 만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계속 결핍된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피해의식을 갖게 되고, 내가 이렇게 불행한 것, 내가 이렇게 힘든 것은 네가 나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를 탓하고, 자녀를 탓하고, 하나님을 탓하고, 사회를 탓하지요. 반면 필요 이론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때, 우리는 ‘플러스’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차고 넘치는 사랑과 은혜를 이미 우리에게 부어주셨기에, 그 은혜와 사랑으로 사람을 대할 때, 우리의 인간 관계는 ‘플러스’와 ‘플러스’가 만나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운 관계로, 그야말로 선물이 됩니다.


시편 34편 9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나의 선한 목자가 되시기에 우리에게는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 본 내용은 "사람이 커 보일 때 하나님이 작아 보일 때"(에드워드 웰치, 개혁주의신학사)와 동일한 책으로 진행된 임승민목사님(담장너머교회)의 특강 "관계수업"의 내용을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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