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린도전서 7:35).
지난 시간에는 흐트러짐이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죄라는 것과 흐트러짐 없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과 다음 시간에는 우리를 흐트러지게 하는 원인들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리차드 스틸 목사님은 흐트러짐의 원인을 12가지로 정리하셨는데요, 오늘은 그 중에 6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은밀한 무신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흐트러지는 것은 은밀한 무신론 때문입니다. 저자는 무신론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추론적 무신론, 심정적 무신론, 실제적 무신론이 그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 14:1). 이 말씀은 추론적 무신론과 심정적 무신론이 무엇인지 말해줍니다. 추론적 무신론은 어떤 이유로 신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교회가 여러 교파, 교단으로 분열되어 갈등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없을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심정적 무신론이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지옥과 같은 끔찍한 곳을 만들어 자신이 창조한 존재를 영원히 고통스럽게 만드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요.
세번째는 실제적 무신론인데요. 실제적 무신론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딛 1:16). 실제적 무신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앞에 없는 사람처럼 예배하는 것은 실제적 무신론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무신론의 원인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우리의 믿음 없음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없을 거야, 없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신론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겸손히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기도와 성경은 그 어떤 주장보다 우리에게 큰 확신을 주는 방편이 되어 왔습니다”(92).
2. 부패한 우리 본성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흐트러지는 것은 우리의 부패한 본성 때문입니다. 부패한 본성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고양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것은 마치 돌멩이에 묶여 날아오르지 못하는 새와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훨훨 날아가고 싶지만, 우리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부패한 본성이라는 돌멩이에 묶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퍼덕거리며 조금 날아오르다 이내 실패하고 맙니다.
부패한 본성은 우리를 흐트러지게 하는 생각들의 근원입니다. 지금 떠오른 흐트러진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부패한 본성은 또다른 생각으로 우리를 흐트러지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일만 생각하지 않으면 예배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벗어나 수도원에 들어가 골방에 앉아 기도할 때에도 우리의 마음은 흐트러지기 쉽습니다. 원인은 세상적인 일이 아니라 우리의 부패한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패한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참되고도 풍성한 은혜”를 받는 것뿐입니다. 곧 성화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더 거룩한 사람이 될수록 세상을 향해서 더 죽게 될 것입니다. 비록 세상의 염려가 맹렬히 몰려와 우리의 마음에 침입하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들을 몰아내기 위해 더 강력한 은혜를 구하게 될 것이고, 그것들에 대해 더욱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는 더욱 우리의 의무(예배와 기도 등)를 더 생동감 있고 영적이며 열정적으로 행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흐트러지는 것을 더 쉽게 막을 수 있게 됩니다.
3. 준비 부족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흐트러지는 것은 예배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왕을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런 준비 없이 있는데 어느새 약속한 시간이 되어 서둘러 옷을 입고 나갔습니다. 왕의 앞으로 나아가는데, 옷에 뭔가 더러운 얼룩들이 묻어 있는게 눈에 들어옵니다. 왕과 대화하고 차를 마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내내 여러분의 마음은 옷에 대한 생각으로 분산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영혼이 아무런 준비 없이 하나님께 다가갈 때 주의가 분산됩니다. 그러므로 진지한 그리스도인은 계속 기도하면서 주의를 기울일 뿐만 아니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도 정신을 바짝 차립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마음입니다. 마음의 준비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지극히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예배는 우리에게 주어진 위대하고도 엄중한 의무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위대하고도 엄중한 의무를 수행하기 전에 우리의 마음이 잘 정돈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고서 거룩한 빛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주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행하기 전에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 119:37)라고 기도하면서 여러분의 마음을 고양시키십시오.
4. 미지근한 마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가운데 우리가 흐트러지는 것은 미지근함 때문입니다. 열정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은 다른 생각을 거의 할 수 없는 법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는 거룩한 일이 시간을 들여서라도 할 만한 일이며 그 어떤 의무보다 탁월하고도 중요한 일이라면, 고통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그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만약 설교와 기도와 집회가 여러분이 노력할 만한 것이 아니라면, 시작하지도 마십시오. 반대로 그것이 정말로 가치가 있다면, 물러서지 말고 무관심해지지도 마십시오.
미지근한 마음의 상태를 치료할 수 있는 최고의 치료법은 다음과 같은 생각과 실천입니다. 먼저 냉랭한 마음으로 행하는 의무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하는 의무는 우리의 마음에도 아무런 감흥을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도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도록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 미지근한 마음을 치료하려면, 빛날 뿐만 아니라 타오르는 불빛으로 자주 달려가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거나 그분의 책을 읽으십시오. 또 열정적인 그리스도인과 교제하십시오. 그들에게서 뜨거운 열기를 얻고, 그들에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빛을 나눠 주십시오. 특히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불붙게 할 것입니다. 길고도 지루하게 기도하지 말고, 차라리 자주 열정적으로 기도하십시오. 마지막으로 경건한 다윗이 썼던 방법을 사용하십시오. 그는 시편 119편에서 자주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끊임없이 부르십시오.
5. 세상에 대한 관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흐트러지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한쪽을 쳐다보면서 다른 쪽으로 노를 저어 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들의 눈은 하늘을 향하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땅에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목적하는 곳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와같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바르게 기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말씀을 묵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흐트러지게 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세상적인 마음이라는 기억하십시오. 예컨대 부요해지는 것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흐트러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재물에 있기 때문에 흐트러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재물로 인해 그 마음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세상에 관심을 두고 있는 마음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죄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향해 살며 그분과 함께 살고 싶다면, 반드시 여러분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세상에 찌든 마음을 제거하고 싶다면 신실한 마음으로 다음에 제시된 방법들을 사용하십시오.
먼저 영원한 행복을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세상의 행복은 너무나 가치 없는 것이며, 그 속에 있는 모든 안락함도 영원한 행복과 비교할 때는 지푸라기 한 올의 무게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다음으로 세상의 것들로 채워진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어리석고 비참한 것인지 생각하십시오. 세상에 대한 지극한 관심은 어떻게든 우리에게 고통을 줍니다. 그런 마음을 가질 때에도 슬픔과 고통이 있으며, 그런 마음을 유지하면서도 슬픔과 근심이 있고, 그것을 잃어버릴 때조차도 슬픔이 수반됩니다. 그런 마음은 결코 완전한 안식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 속에서 자신의 죄를 보고 그것에 대해서 슬퍼하십시오.
한 위대한 정치가는 하나님께 예배하러 갈 때에 세상에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입었던 가운을 벗었으며, 세상의 직무와 관련한 생각들을 결코 하나님 존전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는 의미로 “세실 경이여, 그곳에 엎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기도하러 갈 때에, “가정사여! 그곳에 엎드리라. 삶의 각 영역들이여! 그곳에 엎드리라. 내 근심과 염려들이여! 그곳에 엎드리라. 내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 모든 것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라”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6. 그리스도와 그분의 계명에 대한 사랑의 부족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흐트러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고, 그 결과 그분의 율례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계명과 연합하게 됩니다.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신비하게 연합하는 것처럼,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과 도덕적으로 연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사랑할수록 그분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은 마음과 눈이 그 대상만을 바라보도록 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완전해지는 천국에는 흐트러진 마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보이지 않는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분을 완전하게 사랑한다면, 주님의 임재 가운데 드리는 예배에서 어떻게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잊혀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분께 드리는 예배를 깊이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치료하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합니다. 첫째, 그분을 더 많이 아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실제로 얼마나 탁월하신지에 대해서 더 묵상하십시오.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바로 눈입니다. 그러므로 오십시오. 와서 믿음의 눈을 뜨고 하늘에 계신 이 대상을 주목하여 보십시오. 자리에 앉아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묵상해 보십시오. 둘째,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그분과 교제를 나누십시오. 여러분이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어떤 것인지를 안다면, 기도하면서 그것을 구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기도하는 것 자체를 바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여러분의 영혼이 수많은 천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의 마음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면 그분에 대한 사랑이 커집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그분과 더욱 깊은 교제를 나누도록 여러분을 자극합니다. 셋째,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것보다 더 좋고 만족스러운 것은 그 어느 곳에도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십시오. 이 사실을 믿을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가운데서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흐트러짐(리차드 스틸, 지평서원), 89-129페이지를 요약/정리하여 나눈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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