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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장로교회의 신앙(2) 은혜의 우선성



은혜의 우선성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장로교회가 믿는 신앙의 두 번째 주제는 “하나님의 은혜의 우선성”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고 말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은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혜”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은혜는 아무런 대가나 노력 없이 주어지는 좋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은혜는 부모님의 은혜일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 가운데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시고 채워주시는데 우리에게 어떤 대가나 조건을 바라지 않고 주십니다. 그렇게 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모님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어떠한 것인지 조금은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이 세상에서는 때때로 부모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부모에게 상처를 받거나 버림을 받는 가슴 아픈 일들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베푸시는 은혜는 이 땅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부모가 베푸는 은혜보다 훨씬 더 위대한, 완전한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 필요한 이유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일까요? 사실 대부분의 자녀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나서, 부모님의 품 안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입양을 통해서 자녀가 되는 경우에는, 왜 많은 아이들 중에 나를 입양해서 자녀로 삼았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본래부터 하나님의 자녀였던 것이 아니라 입양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모든 인류는 하나님과 상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런 우리를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 말합니다(엡 2:3). 그랬던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을까요? 에베소서 2:4-5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은혜입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하나님께서 죄로 죽었고, 하나님과 원수였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큰 사랑으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장로교회가 믿는 놀라운 은혜의 우선성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것입니다(롬 5:8).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오직 은혜 때문이고, 그 은혜를 베푸신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엡 2:8)입니다.


우리교회가 믿고 고백하는 교리 표준 가운데 “도르트 신경”이 있는데요, 이 도르트 신경의 주요 주제를 다섯 가지로 정리한 것을 “칼빈주의 5대 강령”(five points of Calvinism)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바로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rverance of saints)인데요, 이 칼빈주의 5대 강령과 도르트 신경을 가리켜 장로교회는 일반적으로 “은혜의 교리”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아름답게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그리스도께서 값주고 사신 구속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효과적으로 부르셔서 그 구속을 적용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이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의 행위로, 의롭다 하시고, 양자로 삼으시고, 거룩하게 하신다고 가르쳐 줍니다(WSC 30-35).


우리는 자칫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니, 이제부터는 우리의 힘으로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실망하시고 괘씸하게 생각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취소하시고 우리를 버리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이 있기 전, 중세의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와 비슷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구원이 시작되었지만, 이 구원을 완성하고 이루기 위해서는 일평생 선행과 회개, 성례와 기도 등을 통해 공로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을 따라 우리의 구원은 시작부터 끝까지, 그리고 그 모든 과정까지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함을 얻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로워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우리는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합니다(빌 1:6). 창세전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시작된 구원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다 이루어졌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그 구속에 참여케 하심으로 이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졌습니다. 이 은혜는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가 영원한 아버지의 집에 이를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하는 은혜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성도는 삶의 모든 순간들 속에서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 23:6)라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장로교회는 무엇보다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우선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는 은혜이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은혜이며, 이 은혜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죄로 인해 죽은 자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우리를 효과적으로 부르시는 은혜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는 우리를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게 하셔서, 마침내 영원한 하나님의 집에 이르게 하는 은혜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함께 생각해야 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은혜를 은혜 언약의 말씀 안에 담아 주실 때, 특별히 노아와의 언약을 통해서 이 모든 은혜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자녀들에게 미칠 때까지 이 모든 세상을 유지하시고 보존하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온 세상을 유지하시고 모든 인류가 보존될 수 있도록 베푸시는 은혜, 단순히 살아만 있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학문, 과학, 문화, 예술 등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좋은 것들을 풍성히 누릴 수 있게 하시는 은혜를 가리켜 우리는 ‘일반은혜’(일반은총)라고 합니다. 장로교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특별한 은혜와 함께 모든 창조 세계에 베푸시는 일반적인 은혜를 믿고 고백합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고 풍성히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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