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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제39문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

최종 수정일: 2021년 12월 5일

문: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그의 나타내 보이신 뜻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1부 복습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1문답)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아간다는 말이지요? 이어지는 2문에서는 이러한 삶의 목적을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3문에서는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고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을 두 가지로 요약해줍니다.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믿을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이 3문의 대답을 중심으로 소요리문답 전체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부라고 할 수 있는 4-38문은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믿을 것은 무엇인지를 다룹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하나님의 존재방식인 삼위일체에 대해,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작정,창조,섭리), 인간의 범죄와 타락에 대해, 죄인의 구속자인 그리스도와 그분의 직분과 사역에 대해, 그리스도의 구속을 우리 각자에게 적용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31분부터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일으키신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 우리가 받게 된 유익들을 크게 세 국면으로 나누어 살펴봤습니다. 금생에서, 죽을 때에, 부활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복과 유익들을 받아 누리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바르게 알고 믿고 고백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내용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영화롭고 아름다운 분인지 보았지요?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죄와 죄로 인한 비참 가운데 있는 우리를 사랑하셨고,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한 구속자로 세상에 오셔서 그분의 온 삶과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셨다는 것, 그리고 성령을 통해 그 구속의 유익들을 우리가 실제로 누리고 경험하게 해주신 일들을 성경과 요리문답을 통해 듣게 될 때 우리는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 감사와 찬송으로 우리 마음이 가득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것의 전부는 아니에요. 우리에게 다른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과 감사와 찬송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타내 보이신 뜻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지식과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와 찬송이라는 열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소요리문답 39문부터 마지막 107문이 다루는 것은 바로 이 순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라는 것이고, 또 사람이 하나님에게 순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그의 나타내 보이신 뜻에 순복하는 것입니다.”(39문)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 순종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 된 우리에게만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대꾸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실 권리가 있습니까? 왜 내가 하나님의 요구를 들어야 하는 겁니까?’ 우리는 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돌보시는 창조주와 섭리주가 되시며, 무엇보다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을 때,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이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어요. 만약 그렇게 하셨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우 무질서한 세상이 되었을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라고 하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을 지으셨어요.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 명하신 자리에서, 명하신 법을 따라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해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 떠오릅니다. 저녁에는 달과 별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며 어두운 밤하늘을 밝힙니다. 바다도 육지를 완전히 덮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킨 채 해변을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합니다. 또한 모든 물체는 언제나 변함 없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집니다. ...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시 119:91)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고, 사람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수명이 다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부족함 없이 공급해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따라서 사실 이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요구하실 권리가 있고, 우리는 그분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피조물과 같이 사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은 바 되었고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그렇게 순종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아담의 범죄의 결과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심으로 우리를 값 주고 사셨으며, 성령께서는 그 구속을 우리의 소유가 되도록 우리 안에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가 되실 뿐 아니라 구원의 주가 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의 창조주와 구원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여주셨고 순종을 명령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순종은 어떤 모습의 순종이 되어야 할까요?

어떻게 순종해야 할까요?(토마스 왓슨)

첫째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때에 우리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억지로, 마지 못해서 하는 순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명하시는 순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우상숭배자들이 자기가 섬기는 신들의 호의를 얻어내기 위해, 또는 신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노예가 자신을 가혹하게 다루는 주인의 채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순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거나 요구하시는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은 우리를 만드시고 구원하신 하나님 자신께 대한 감사와 찬송의 마음을 표현하는 순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하나님과 아버지가 되어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순종은 반드시 자원하는 순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은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그러하기에 부모님은 여러분을 위한 수고를 기꺼이 감당할 뿐 아니라 그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여러분을 양육하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 사랑의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순종, 자원하는 순종을 명하시고 요구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습니까?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합니까? 만약 우리의 순종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자원함으로 드리는 순종이 아니라면 우리는 다시 소요리문답의 1부로 돌아가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죄로 인한 비참 가운데 있던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고, 그 사랑 때문에 치르신 대가는 얼마나 값비싼 것이었는지를 생각해보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명하시는 순종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한 순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기 쉬운 계명들에 대해서는 순종하지만, 순종하는 데에 좀 더 큰 위험과 희생을 치를 것으로 생각되는 계명들에 대해서는 순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의 신앙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말씀이 명하는 제사와 헌물에 대한 명령은 철저하게 지켰으면서도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고 그들을 괴롭게 하는 일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어요. 예수님은 그런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보시고 그들을 꾸짖으셨어요.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마 23:23) 왜 그들은 제사와 헌금에 대한 명령에는 순종하면서 고아와 과부와 같이 힘이 없는 사람들을 은밀히 돌아보라는 명령에는 무관심 했을까요?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순종의 동기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약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일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이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 사랑했던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었고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이었어요. 만약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렇게 부분적인 순종을 드리고 있다면, 우리의 마음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해요. 만약 집 밖에서 친구들과는 우애 있게 지내면서도, 집에 있는 누나나 오빠, 동생들과는 원수처럼 지내고 있다면 또는 부모님께 무례히 행하며 순종하지 않는 그런 친구가 있다면 그런 친구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친구와는 잘 지내고 있으니, 친구들과 다투고 미워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만약 저와 여러분이 다른 아홉 가지 계명을 지키고 있다 해도 한 계명을 범하고 있다면, 결국 우리는 모든 계명을 범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그런 태도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 최고로 여기는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임을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그런 마음으로 행하는 나머지 아홉 가지 순종은 더 이상 순종이라고 할 수 없는 거예요. 야고보 사도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그의 나타내 보이신 뜻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39문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우리의 본분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고, 이 순복이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부분적인 순종이 아니라 우리의 온 마음으로 드리는 순복을 말합니다. 이러한 순종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의 참된 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여러분을 지으시고 보존하시며 구원하신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습니까? 순종하고 있다면 어떻게 순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정직히 우리 자신의 마음과 삶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네”라고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과연 구원의 소망이 있는 걸까요? 네. 있습니다. 우리는 잘 순종치 못하고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의 요구에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순종치 못하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뜻에 즐거이, 온전히 순종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다시 한 번 순종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구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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