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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제41문 도덕 법칙의 요약, 십계명

제41문 그 도덕의 법칙이 요약되어 나타난 곳은 어디입니까?

답: 그 도덕의 법칙은 십계명에 요약되어 나타나 있습니다.

Q41. Where is the moral law summarily comprehended?

A41. The moral law is summarily comprehended in the Ten Commandments.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신 4:13)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면서 사람이 마땅히 복종할 규칙을 나타내 보이셨어요. 40문에서는 그것을 도덕의 법칙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창조하신 아담의 마음에 이 도덕의 법칙을 아는 지식을 주셨어요. 그래서 아담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어요. 그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행해야 할 바를 말씀으로 가르쳐주기도 하셨어요. 특별히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말씀은 아담이 순복해야 할 하나님이 계시며 아담 자신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했어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새겨주셨던 도덕의 법에 대한 지식은 타락 이후에 매우 희미해지고 말았어요. 물론 타락한 후에도 율법이 사람의 마음 안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고 변명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가 벌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율법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 안에 율법이 작용하고 있어서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된다고 말씀합니다(롬 2:14-15).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신 도덕의 법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내가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변명할 수 없는 거예요.



이처럼 타락한 사람의 마음에서 율법이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식은 타락으로 인해 매우 희미해지고 말았어요. 그리하여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을 저버리고 자기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따라 살아가게 되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도덕적 기준을 세워놓고 그것을 따라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매우 의롭고 선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사회의 법과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신을 다른 악한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매우 후하게 평가합니다. ‘이 정도면 나는 참 의로운 사람이야.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남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셨을 때 내셨던 도덕의 법에 비추어보아도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그런 후한 평가를 할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도덕의 법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정직히 살필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율법의 의의 기준에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거예요. 문제는 우리가 타락과 함께 하나님의 도덕 법에 대한 지식을 대부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죄인됨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것의 더 큰 문제는 구원을 바라거나 소원하지도 않을 거라는 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매우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봅시다. 빨리 치료 받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하게 될 만큼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거나, 이 병이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무서운 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치료를 받고 회복될 수 있을까요? 빨리 수술을 해야 하는 병인데,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면 곧 낫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곧 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린 모든 사람의 처지가 이와 같습니다. 타락한 사람 안에 남아 있는 희미한 율법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우리 영혼의 질환을, 우리의 죄악됨을 알아야 할대로 다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덕의 법칙을 나타내어 주셨습니다. 41문은 “그 도덕의 법칙이 요약되어 나타”났다고 말씀합니다. 어디에 나타났을까요? 십계명입니다. “그 도덕의 법칙은 십계명에 요약되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판에 친히 십계명을 새겨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신 4:13) (십계명 읽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은 “요약”되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 열 가지 계명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 전체가 아니며, 십계명은 도덕법 전체에서 중요한 부분을 간추리고 정리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것만을 금하는 계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계명 속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합법적인 노력을 기울여 우리 자신의 생명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라는 적극적인 요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68문). 또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우리 자신의 생명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미워하지 않고 아끼고 사랑하라는 더 깊은 차원의 요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십계명을 공부할 때,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도덕의 법의 요약이라는 사실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열 가지 계명이 금하거나 명하는 문자적인 내용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지 말아야 하고, 각 계명이 담고 있는 더 깊은 의미를 잘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십계명에 담겨진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우리 각자의 마음과 행실에 비추어보고 우리 자신의 영적 실체가 어떤 것인지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도덕의 법의 기준에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의인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 같은 죄인을 위해 세상에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도덕의 법칙이 요약되어 나타난 십계명을 공부할 때에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해주는 용도 이외에 십계명이 가진 또 다른 중요한 용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또 다른 목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신자의 삶의 규범으로 주셨습니다. 율법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는 방법으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갑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주님께서 온전한 삶과 죽으심으로 얻으신 의를 값없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은혜를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십계명은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어떻게 우리는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를 위해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신 주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어디에 나타나 있습니까? 도덕의 법칙이 요약되어 나타난 십계명에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기 백성들이 감사의 삶을 살도록 주신 규범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셨다는 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제 십계명을 주셨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 종 죄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후, 시내산에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후에 도덕법의 요약인 십계명을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계명을 완벽하게 지켜서 스스로를 구원하도록 주신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 계명을 지키는 여부와 상관 없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으셨던 그 언약을 따라 은혜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후,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는 자리에서 십계명을 주셨어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계명을 지켜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하신 거예요.


십계명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계명을 지키며 살아갈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기뻐하시고 상 베풀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상을 주십니까? 우리가 계명을 지켜 행하며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경험하게 해 주십니다.이전에 조금 알았던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고 풍성하게 알게 해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9-10)



오늘 우리는 40문을 통해 하나님의 도덕의 법칙이 십계명에 요약되어 나타났다는 것을 살펴보았어요. 하나님께서는 타락으로 도덕의 법에 대한 지식이 희미해진 사람이 자신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려고 십계명을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십계명을 통해 우리에게 의가 없다는 사실을 바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절망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한 구속자를 말해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셔서 저와 여러분 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만이 우리의 의와 구원이 되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감사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십계명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 계명을 따라 순종하며 감사의 삶을 잘 살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복된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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