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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제42문 십계명의 강령, 사랑

제42문 십계명의 강령은 무엇입니까?

답: 십계명의 강령은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Q42. What is the sum of the Ten Commandments?

A42. The sum of the Ten Commandments is, “to love the Lord our God” with all our heart, all our soul, with all our strength, and with all our mind; and our neighbor as ourselves.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법이 있다고 하였어요. 소요리문답 40문은 그것을 도덕의 법칙(도덕법)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 이 법을 사람의 마음에 새겨주셨어요. 그래서 아담은 이 법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담의 범죄와 타락으로 인해 사람의 마음에 새겨진 이 법에 대한 지식은 매우 희미해지고 말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신 본분을 저버리고 자기 생각과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되었지요. 더 큰 문제는 도덕법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죄인인 것과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어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이 도덕 법칙의 요약을 돌판에 새겨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통해 사람이 자신의 영적인 실상을 바로 볼 수 있게 해 주셨어요. 십계명에 요약된 도덕법을 통해 우리 자신의 마음과 말과 행실을 살피고, 우리가 하나님의 법의 요구에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하신 거예요. 그리하여 우리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복음이 제시하는 그리스도께 나아가 우리 자신을 맡기도록 하셨어요. 이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와 비참을 깨닫고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게 하는 것, 이것이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첫 번째 목적이에요.(거울)


이와 함께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목적이 하나 더 있다고 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신자가 어떻게 감사의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삶을 살고자 하는 소원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율법을 좇아 살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강령, 사랑

따라서 십계명을 아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너무도 중요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도 42문부터 84문까지, 매우 많은 부분을 할애하면서 십계명을 한 조항 한 조항 해설하고 있습니다. 그 중 오늘 살펴볼 42문은 십계명을 살펴보기에 앞서 십계명의 강령(요약)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42문을 함께 읽어봅시다. “십계명의 강령은 무엇입니까? 십계명의 강령은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41에서는 도덕법의 요약이 십계명이라고 했지요? 42문에서는 십계명을 다시 두 가지 계명으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고 둘째는 이웃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결국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사랑”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하나님을 향해, 그리고 사람을 향한 사랑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것이 십계명의 첫 번째 요약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가장 뜨겁게,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장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위를 둘러 있는 천사들에 대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그 천사를 가리켜 “스랍”이라고 부릅니다. “스랍”이라는 말은 ‘불타는’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인데, 천사를 가리켜 그렇게 부른 이유는 그들이 불에 타는 듯한 빛나는 모습으로 하나님 주위를 모셔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스랍들과 같이 불타는 듯한 사랑으로 열렬하게,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을 말합니다. 미지근한 사랑은 하나님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또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는 많은 돈을 사랑하거나 사람들로부터의 인정과 칭찬을 사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들에 대한 사랑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가장 뛰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그 외의 것들 사이를 오가며 머뭇머뭇하다 마지 못해 하나님을 택하는 사랑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압도적으로 사랑하고 하나님과 비교했을 때에 다른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기는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자신의 아름다움과 완전하심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거나 주실 수 있는 것을 사랑하면서,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것을 거두어가시면 그는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고, 하나님 사랑하기를 망설임 없이 중단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요구하실 때에 하나님은 이런 사랑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자신을 사랑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사랑합니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십계명의 두 번째 요약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부터 열 번째 계명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대할 때에 우리 자신에게 하듯 이웃을 진실하고 변함 없이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이웃이 우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우리도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해야 하는 우리의 이웃은 누구일까요? 우리 가족이나 친구들만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그들이 사랑하고 선을 베풀어야 하는 이웃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자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이방인들이나, 하나님의 율법을 배반했다고 여겼던 사마리아인들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멀리하고 외면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루는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물었어요.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한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 강도를 만났어요.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거의 죽도록 때리고 그를 버리고 떠났어요. 그때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지만 피해 지나가고 말았어요. 잠시 후 한 레위인도 그 길을 지나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지만 지나갔어요.


얼마 후 한 사마리아인이 여행을 하는 중에 강도 만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았어요. 유대인들이 그토록 미워했던 사마리아인입니다. 하지만 그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겨 그에게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고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데리고 가 그를 돌보아 주었어요. 그리고 다음날 길을 나서기 전 주막의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주면서 ‘이 사람을 잘 돌보아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아주겠소’하고 말하였어요.


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예수님은 물으셨어요. “네 의견에는 이 세삼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사는 대답했어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어요.


유대인들은 사랑을 베풀고 선을 행해야 할 이웃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지요. 따라서 이렇게 자시들을 원수와 같이 대했던 유대인들을 사마리아인이 사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겠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은 강도를 만났던 유대인을 긍휼과 사랑으로 보살펴주었지요.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으셨던 걸까요? 사랑하지 않아도 될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유대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사마리아인이 유대인을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너도 이(사마리아인)와 같이 하라”말씀하시며, 우리가 사랑하지 않아도 될 그런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율법의 두 번째 요약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우리가 아끼고 사랑해야 할 사람에는 원수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위해서 기도하며 그들이 나에게 악을 행한다 해도 선으로 갚아주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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