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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제79문 제10계명은 무엇입니까?

최종 수정일: 2022년 10월 22일

제79문: 제10계명은 무엇입니까?

답: 제10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하신 것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 20:17)

제10계명은 우리 마음의 탐심의 문제를 다루는 계명입니다. 10계명을 읽어봅시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 20:17) 무언가를 탐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말합니다.

10계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탐내지 말아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이웃의 집, 이웃의 아내, 이웃의 남종이나 여종, 이웃의 소나 나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이웃의 소유는 그 어떤 것이든지’라는 말로 결국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웃의 부나 명예, 건강, 성공, 지위, 은사를 인해 이웃을 시기하거나 그것을 탐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10계명에 반복해서 언급되는 단어인 “이웃”은 우리의 탐심이 우리 이웃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보통 우리가 우리의 것에 만족하지 못할 때는 언제입니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힐 때가 언제입니까? 보통 탐심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는 데에 매우 익숙합니다. 내게 없는 것을 다른 친구가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저 친구가 가진 것을 왜 나는 갖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에 쉽게 빠져듭니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기도 하고 다른 친구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데까지 나아가기도 합니다. 반대로 다른 친구가 갖지 못한 것을 내가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뽐내며 다른 친구를 얕잡아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하신 목적은 그런 데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살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신 것은 서로를 사랑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타락하기 전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지 않았고, 늘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내 곁에 있는 친구를 향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 이웃은 어떻게 지내는지 돌아보고 혹시 부족한 것이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없는지,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를 살펴보고 서로를 돌보며 서로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행위언약에서 우리의 대표였던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서로 사랑하도록 허락하신 이웃에 대한 관심도 죄악된 방식으로 작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타적이었던 사람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부패한 사람도 이웃을 향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관심의 목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타락 전 사람이 이웃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이웃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지만, 타락한 이후 모든 사람을 향한 관심은 이웃과 나를 끊임 없이 비교하면서 탐욕을 추구하는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부패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자신에게 허락해주신 것들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이웃을 흘겨보며 이웃의 소유를 탐내며 살아갑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진 친구를 시기하고 자기 처지를 슬퍼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선물로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 없이 살아갑니다.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이 너무나 일반적인 경우라 이와 관련한 속담도 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아홉 가진 놈이 하나 가진 놈 부러워한다.”

물론 이웃의 소유를 탐하지 말라고 하여서 우리가 아무런 욕망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배가 고플 때 우리는 식욕을 느낍니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또 피곤하고 잠이 부족하면 자야 합니다. 때로 친구를 필요로 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 우리가 느끼는 것과 같은 여러 욕구를 느끼셨습니다. 갈증을 느끼시고 물을 달라고 요청하실 때도 있었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는 함께 기도할 친구들을 필요로 하기도 하셨습니다. 10계명이 말하는 탐심은 사람으로서 자연스레 가지게 되는 욕구와는 다른 것입니다.

10계명이 금하는 탐심은 우리가 사람으로서 가진 자연스러운 욕망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웃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입니다. 그렇다면 탐심이 중대한 죄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탐심이 모든 죄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10계명은 지금까지 살펴본 다른 계명들과 중복되는 계명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10계명에서 하나님께서는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고 하셨는데 이는 “간음하지 말지니라”하신 7계명을,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는 계명은 “도둑질하지 말지니라”하신 8계명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10계명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앞선 계명들과 비교할 때 10계명의 강조점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의 계명들은 주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말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면, “탐심”의 문제를 다루는 10계명은 이 모든 문제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라는 말은 우리가 행동하기 이전의 모든 것, 그 뿌리까지를 포함합니다. 죄를 실제로 범하는 것 뿐 아니라 죄를 범할 생각과 죄를 범하기 이전의 ‘마음’의 죄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나머지 계명들을 범하는 죄의 뿌리를 추적해 나가면 거기에는 탐심이 있습니다. 탐심으로부터 모든 죄들이 태어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탐심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우상을 찾습니다(1계명). 탐심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예배하지 않습니다(2계명). 탐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규례를 함부로 사용합니다(3계명). 탐심 때문에 하나님이 쉬라고 한 날에 쉬지 않고 일하도록 주신 날에는 힘써 일하지 않습니다(4계명).

탐심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권위에게 순종하지 않습니다(5계명). 탐심 때문에 이웃을 미워하고 살인합니다(6계명). 탐심 때문에 하나님이 내신 혼인과 가정 제도를 파괴하는 간음죄를 짓습니다(7계명). 탐심 때문에 하나님과 이웃의 소유를 도둑질합니다(8계명). 탐심 때문에 거짓을 말하고 이웃의 명예를 훼손합니다(9계명).

세상 사람들은 거짓말이나 도둑질, 간음과 살인과 같은 죄에 대해서는 큰 죄로 여기지만,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는 계명을 범하는 죄에 대해서는 매우 가볍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식물의 열매와 꽃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땅 속에 묻혀있는 뿌리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처럼 탐심의 죄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탐심을 심각한 죄로 여기지 않고, 탐심을 부추기기까지 합니다. 세상의 법정에서 탐심의 문제를 다루거나 처벌하지 않는 것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6:2)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10) 사람은 우리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살피시고 마음의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며 벌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열번 째 계명을 통해 우리 안의 탐심을 제거하고 순결한 마음을 드릴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인은 죄인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시편기자와 같이 ‘주께서 우리 죄를 감찰하시면 누가 서리이까’라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는 것은 풍성한 구속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망 없는 죄인을 위한 구주로 자신의 아들을 보내주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회개하고 자신께 피하는 죄인을 위해 대신 형벌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께로 피해야 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딤전 1:15) 의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과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께로 피합시다. 그분께 나아가 우리의 행위와 말과 마음의 모든 죄를 숨기 없이 아뢰고, 우리를 용서하여 달라고 우리 마음을 고쳐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주님 자신의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 마음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점 더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삶으로 나아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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