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2)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 6:9)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부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원문의 순서는 “아버지, 우리의, 하늘에 계신”(Πάτερ ἡμῶν ὁ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입니다. 순서와 중요성을 고려할 때 ‘아버지’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
앞서 주님이 지적하신 외식하는 기도와 중언부언하는 기도의 문제는 기도의 대상이 바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기도의 대상은 중요치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도입니다. 외식하는 기도는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은 부르지만, 실상은 사람을 향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전자의 경우는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셨고(마 6:8), 후자의 경우는 은밀한 중에 보시고 갚으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6). 그러므로 주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은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아버지 하나님’이신 것을 바르게 인식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20문은 이것이 “기도의 기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우리는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땅의 아버지들 중에 자녀가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고, 알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주는 그런 아버지가 있겠냐고 물으시며, 죄인인 우리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1:9-13).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한다는 것은 이와 같이 아버지를 공경하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사랑이 많고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 우리는 조건 없이 응답받을 수 있고,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받을 수 있으며, 구하지 않은 것까지 응답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친밀한 기도는 사람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에게만 허락된 특권입니다(요 1:12-13). 본래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주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우리 대신 죄인의 자리로 나아가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엄청난 희생의 대가로, 아무런 의도 선함도 없이 죄로 가득한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담대하고 자유롭게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복음에 대한 믿음의 반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완전한 자격이 죄인에게 주어졌다는 복음을 믿음으로써만 매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개인기도 시간에 평소처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펴고 기도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나 혼자뿐인데 왜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해야 하지? 이런 의문을 품고 생각하다가보니 결국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공간에서 나 혼자 기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홀로 존재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모든 성도들과 연합되어 있어서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고 말이지요.
교부 키프리아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평강의 교사요 일치(unity)의 주인께서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려는 사람이 기도하듯 홀로 개별적으로 드리는 기도는 받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여’라고도, ‘오늘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각 홀로 자기 죄만 사함 받기를 구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 시험에 들지 않고 자기 자신만 악에서 건짐 받기를 청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기도는 공적인 기도, 공동 기도다. 기도할 때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 전체를 위해서 기도한다. 우리는 전체가 하나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평강의 하나님이요 화합의 교사로서 일치를 가르치신 분께서는 자신도 우리 모두를 하나로 감당하심과 동시에 우리도 이렇게 한 사람이 모두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기에, 우리 사이에는 어떤 차별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황제나 걸인이나, 주인이나 종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기도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일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기도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주님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말할 때, 여기서의 ‘우리’ 안에는 예수님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는 분일 뿐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기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자녀의 신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기꺼이 ‘우리’가 되셨고, 우리를 향해 자신의 형제와 자매라고 부르셨습니다(히 2:11).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여기서 하늘은 공간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하늘보다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왕상 8:27). 그럼에도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사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위대하신 분이라는 의미를 담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 분이신지 생각하며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 5:2).
이렇게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 만물의 통치자이신 그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 땅의 아버지는 지혜와 능력에 있어서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라도 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주었는데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는 이런 일이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실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중요한 교훈이 또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우리가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이 사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의 내용을 돌아보면 금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로 이 땅의 것들과 필요를 위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땅의 것들을 구할 수 있고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전부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신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기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답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자녀답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른 후에 서둘러 간구할 내용을 쏟아내지 마십시오. 먼저 이 말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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