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린도전서 7:35).
“흐트러짐” 마지막 시간입니다. 흐트러진 자에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흐트러진 자를 향한 위로와 격려
정직한 그리스도인들도 빈번하게 흐트러지는 것으로 인해 영적 생활과 예배에서 낙심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낙심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흐트러짐이라는 짐을 지고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격려와 위로의 말을 전하고자 합니다. 먼저 저는 두 가지 사실을 단언합니다.
첫째, 흐트러짐이 여러분을 예배의 자리에서 쫓아낼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흐트러진 상태로 예배를 드리느니 차라리 예배를 드리지 않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거짓된 마음은 그런 핑계로 은밀하게 우리의 의무를 놓아 버리려는 경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거짓말을 믿지 마십시오. 사탄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부르느니 차라리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우리에게 심어 놓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분을 더 깊은 함정에 빠뜨릴 뿐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 여러분의 찢겨진 제사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합니다. 떨리는 손으로 여러분의 주님을 섬기는 것이 그분을 전혀 섬기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의도가 좋았다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그것이 훼손되었다고 할지라도 너그럽게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둘째, 예배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흐트러짐이 여러분을 전적으로 좌절시키게 해서는 안 됩니다. 흐트러짐은 틀림없이 여러분을 불쾌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으로 인하여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좋으신 우리 주님은 우리가 힘겹고도 무겁게 예배드리도록 우리를 몰고 가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무리 연약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를 좌절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을 돕기 위한 몇 가지 격려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흐트러짐은 은혜와 양립할 수 있습니다. 흐트러짐과 은혜는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비록 활기차게 오랫동안 함께 살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흐트러진 생각들은 가라지와 같아서, 가장 좋은 곡식이 자라는 땅에도 함께 섞여 있습니다. 은혜가 비록 그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것과 함께 살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스스로 “오, 내가 이런 일로 이토록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니 내게는 은혜가 없는거야! 정녕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없어!”라고 성급히 결론 내리지 마십시오. 진정 은혜와 절대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그런 끔찍한 죄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무서운 죄, 곧 성령을 훼방하는 죄가 아니라면, 여러분의 고통을 조금 누그러뜨리십시오.
그러므로 이런저런 부패한 생각이 여러분의 마음에 도적처럼 침입할 때, ‘나는 타락한 사람이야. 이런 것은 은혜와 공존할 수 없어’라고 하면서 울지 마십시오. 다만 이런 것이 은혜와 공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은혜와 흐트러짐이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은 우리의 영을 낙담시킵니다. 그러나 공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우리가 고침 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영을 분발시켜 줍니다.
(2) 당신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가련한 영혼이여! 당신만이 홀로 그런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자들을 찾아가 보십시오.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 자신처럼 경솔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우리 자신보다 더 선하게 될 것을 소망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일반적인 경험은 인간의 생각에 항상 악한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3) 그리스도께서 쉬지 않고 중보하십니다. 제물이 드려지지 않을 때에도 제단에는 언제나 불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제사가 중단되어도 주님의 중보는 계속됩니다. 가련한 죄인이여! 여러분은 때때로 죽은 것처럼 되어 전혀 기도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죄스러워 감히 기도할 수 없고, 때로는 너무나 흐트러져 여러분이 기도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중보자는 여러분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어떤 의미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없는 때에도, 그토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는 존귀하고도 영화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십시오.
(4) 흐트러짐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설교를 잘 듣고 기도를 정확히 한 후에도 전혀 교만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방황하고 길을 잃어버리는 것을 허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흐트러짐의 죄에 더욱 안전히 머물러야겠다고 하는 당치 않은 생각은 하지도 마십시오.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사용하여 선한 일을 이루시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혜를 더하기 위해 감히 죄를 지으려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은혜롭게 받아 주십니다. 우리가 흐트러지게 드린 예배 중에서도 하나님은 의미 있게 드려진 부분을 찾으시며, 그것으로 우리에게 얼마간의 유익을 주십니다. 여러분이 만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필요를 분명히 인식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온다면, 비록 여러분의 마음이 도중에 뜻하지 않게 넘어져서 그것 때문에 슬퍼하고 있더라도,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의 의도를 받으시고 여러분의 간청을 들어 주실 것입니다.
(6)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와 능력이 흐트러짐과의 싸움을 돕습니다. 그리스도의 손은 여러분처럼 곤핍한 영혼을 돕기 위한 은혜로 가득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한 은혜가 부족하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그때에도 그분의 은혜는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능력과 자비를 의지하고, 거기에서 여러분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도울 하늘의 능력을 이끌어 내십시오. 남편이 황태자인 여인이 가난할 수 있습니까? 가난한 자들에게 부요한 분이시고, 약한 자들에게는 강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십시오.
(7) 천국에서는 어떤 흐트러짐도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여러분에게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밖에 없지만, 거기에서는 그분을 온전히 섬기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세상이 우리를 귀찮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지만, 거기에는 이 세상은 간데없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있을 것입니다. 오! 속히 달려가십시오. 머지않아 거기에 도달할 것입니다. 모든 세상 일을 뒤로 제쳐 두고 급하게 서둘러 달려가십시오. 여러분의 일을 모두 마치고 여러분이 거할 처소가 하늘에 마련되기까지, 세속적인 안락함에 닻을 내리지 마십시오. 또한 그렇게 하는 도중에 여러분이 흐트러지더라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아직 천국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완전함은 의무일 뿐 아니라 상급입니다. 그것이 여기에서 우리가 달려갈 목표이며, 거기에서 우리가 도달할 목표인 것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이 말씀이 흐트러짐이라는 죄짐을 지고 힘겨워하는 가련한 영혼에게 격려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흐트러짐
(1) 최상으로 드린 예배에 대해서도 애통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아! 우리는 얼마나 상하고 찢겨진 제물을 하나님께로 가져오는지요. 우리는 얼마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이 임재하신 자리에서 잘도 빠져나가는지요! 예배를 잘 드렸노라고 자랑하는 사람이야말로 얼마나 무지하고도 교만한 사람입니까? 최상으로 드렸다는 우리의 예배조차 거지의 외투처럼 여러 가지 얼룩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지성소에 상달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이 상달되지 못할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원은 상달됩니다. 우리의 빈약한 기도는 자주 중단되고 설득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중보는 지속적이며 호소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사랑하는 주님을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의 고귀한 이름을 단지 여러분의 시시한 기도 끝에 언급하는 정도로 그치지 말고, 기도의 문장마다 그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상한 기도자에게는 온전한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2)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위험합니다. 기도 중에 흐트러지는 것에도 화가 있다면, 기도를 아예 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의 양심이 예배 중에 헛된 생각에 빠진 것 때문에 매 맞은 듯 쓰리다면, 예배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입을 상처는 어떠하겠습니까? 오, 은밀한 기도와 성경 읽기와 묵상과 그 외 거룩한 의무를 게을리하는 여러분이여! 여러분이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그분은 여러분이 은밀히 탄식하는 것을 좀처럼 보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도와 눈물에 낯선 자가 되었습니다. 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신앙에 있어서 진리와 의무는 하나의 사슬로 묶여 있습니다. 의무를 행하는 편이, 의무를 행하지 않는 편보다 신앙의 길을 더 쉽게 가게 해 줍니다. 거룩함을 반대하는 것은 천국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깨우십시오. 이 교훈을 붙잡으십시오. 유흥과 방탕을 멀리하고 여러분의 의무를 적극적으로 행하십시오.
(3)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계속적인 의무로서, 마치 우리가 매일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 시간이 아닐 때에도 기도하는 마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며, 기도 시간에는 기도의 복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아침과 저녁에 특별히 하나님을 바랄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시간에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진실로 슬픈 사실은, 아침과 저녁에는 아주 진지하고도 열심히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낮에는 하루 온종일 하나님이나 천국에 관한 단어를 거의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경건이란 오직 예배 시간에만 해당된다는 듯이 말입니다. 하루 온종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의식하고 두려워하십시오. 그 속에 둘러싸이고 빠지고 잠기십시오. 이는 여러분에게서 예배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
저는 신실함과 깨어 있음이 포괄적인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신실함은 모든 은혜를 참되게 하고, 깨어 있음은 모든 은혜를 확실하게 합니다. 여기에 경건의 본질과 경건의 정수가 있습니다. 오, 그러므로 이 은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경건을 연습하십시오. 그리하여 그것을 몸에 익히십시오. 마치 어린 아이가 한 발 한 발 떼면서 걸음마를 배우고, 그다음에는 용기를 내어 수영하는 법을 배우듯이, 용기를 내어 연습하십시오. 한 시간 동안 연습하고, 하루 동안 연습하고, 한 주 동안 연습하고, 다음 단계를 시도해 보십시오. 넘어지는 것을 반복하더라도, 여러분의 다짐을 새롭게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4) 흐트러짐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조율하는 분은 주님이시지 여러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줄을 끊어 버리기도 하고, 마음의 조율 상태를 엉망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모든 것을 고치고 온전하게 맞추어 주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이 여러분을 치유하고 자유롭게 합니다. 비록 여러분은 쉬지 않고 기도할 수가 없다 해도, 하늘 문에 이를 수가 없다 해도, 거기서 여러분의 간구를 아뢸 수가 없다 해도, 여러분의 간구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그 속에는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오, 여러분을 홀로 방치해 두지 않으시고 여러분을 한없이 긍휼히 여겨 주시는 주님을 송축하십시오. 여러분이 흐트러지지 않고 주님을 섬겼을 때에도 여러분 스스로 잘했다고 여기지 말고 주의 은혜가 여러분을 도왔다고 생각하십시오.
(5) 경건은 내면적인 것이며, 어렵고도 진지한 일입니다. 내면적으로 성결하며 깨어 있는 사람,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마음의 허영심을 베어 버림으로써 마음의 할례를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것, 그것이 바로 경건입니다. 경건에는 몸으로 드리는 경건과 영혼으로 드리는 경건이 있습니다. 몸으로 드리는 경건은 경건의 몸일 뿐입니다. 영혼으로 드리는 경건이야말로 경건의 핵심입니다.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 사람의 죽음을 의미하듯이, 경건의 형식과 능력이 분리되는 것은 곧 경건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림자에 머물러 논쟁이나 하고 있을 때, 여러분은 그것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꿇은 무릎’에 대해 논쟁하느라고 ‘상한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잘못입니다.
경건은 어렵고도 진지한 일입니다. 잠든 채로 노을 저으면서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하나님과 씨름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거룩한 성도들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그토록 힘을 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경건이야말로 자신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았고, 그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육욕을 억제하지도 않고 깨어 있지도 않으며 열심을 품지도 않으면서, 편안하게 살다가 편안하게 죽겠습니까? 경건의 삶에서는 아무런 기쁨을 찾지 않고, 헛된 일에서만 기쁨을 얻겠습니까? 여러분은 경건의 삶에는 그토록 미숙하며, 세상 일에만 그토록 능숙하단 말입니까? 잠에서 깨십시오. 성경을 보고, 여러분 자신을 보십시오. 그리하여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을 바로 깨달으십시오. 그 길은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보배로 여기고, 경건을 여러분의 중요한 용무로 여기며, 성경을 여러분의 규칙으로 삼고, 천국을 여러분의 목표로 정하고, 성도들을 여러분의 동무로 삼으며, 예배를 여러분의 기쁨으로 삼는 것입니다. 예배하러 갈 때에는 여러분이 주님을 섬기러 가는 것이며, 이 일은 흐트러짐이 없이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의 의무를 알고, 자신의 위험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결론은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책의 가르침의 최종 목표는 여러분의 동의를 얻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순종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이란 영적인 깨달음의 형태이기도 하지만, 또한 실천에 옮기게 하는 영적인 동력이기도 합니다.
외면적인 경건은 여러분을 천국의 문 앞까지만 데려다 줄 것입니다. 내면적인 거룩함이야말로 여러분을 행복의 문 안까지 이끌어 줄 것입니다.
* 흐트러짐(리차드 스틸, 지평서원), 235-270페이지를 요약/정리하여 나눈 내용입니다.
첨부한 파일은 '흐트러짐'(리차드 스틸, 지평서원)의 요약본입니다.
Comments